회원가입

비번찾기

처음으로  |   교회소식   |   교회행사     

설교 sermon   |   칼럼 Colum

    60주년행사   |   자유게시판

 
   

교 회 소 개

   교회역사

    담임목사

   교회비젼

   섬기는사람

   예배안내

   차량안내

   연중계획

   오시는길

설  교   sermon
   (정용환목사)

칼   럼   colum
  (정용환목사)

  교 회 행 사 Event

찬       양

    찬 양 대

    엘로힘찬양단

    찬양_praise

    찬양게시판

주 일 학 교

    주일학교소개

    영유치부

    초 등 부

    중고등부

    청 대 부

나   눔   터

    자유게시판

    갤러리/ucc

    교우동정

    교회소식

 

전도/선교/복지

    전도기관

    새가족갤러리

    선교지역

    선교지소식

    지역아동센타

    특별활동

  교 인 사 업 장

  화  원  동  산

    (교회묘지)

 

 

포인트순 글등록순 새내기
관리자 0  
백곰이 0  
김길순 0  
홍주용 0  
5 오성일 0  
6 김나영 0  
7 안광수부목사 0  
8 사랑스런옥이~ 0  
9 김일봉 0  
10 나정순 0  
11 주바라기 0  
12 고재홍 0  
13 사랑으로 0  
14 주님사랑해요 0  
15 시온사랑 0  
cache update : 30 minute

전체방문 : 80,685
오늘방문 : 4
어제방문 : 49
전체글등록 : 4,891
오늘글등록 : 2
전체답변글 : 107
댓글및쪽글 : 81



 
정용환 목사 칼럼
작성일 2024-02-20 (화) 17:07
ㆍ추천: 0  ㆍ조회: 605      
IP: 118.xxx.175
나의 삶 그리고 목회 여정(旅程)
 
두번째 이야기  


                     목포시온교회 

                     정 용 환 목 사



   해군 군목(3년 6개월)
 
    필자는 1980년 1월 10일 임시로 소집된 전북노회에서 홀로 목사안수를 받고 그해 4월 12일 광주 보병학교(3개월 훈련), 그 후 해군사관학교 (1개월 훈련) 후 드디어 그해 8월 1일부로 진해 함대 사령부(해군 중장) 1전단 군목으로 배치를 받았다. 해군 대령만도 50여명 이상 되는 큰 부대였다. 젊음을 다 바쳐 충성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진해만을 달리고 달렸다. 당시 해군 군종감(전동식 목사, 해군 대령)이 어느 때인가 군목 후보생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씀했다고 한다. “지금 목포에 있는 정용환 목사는 보통 장기 군목들이 30년 동안 할 일을 3년에 다 마친 목사다” 라고요. 자랑처럼 들렸다면 넓은 마음으로 용서하시기를...진해 함대 사령부에서는 D.D. 구축함을 몇 대씩 연결해 놓고 밤마다 부흥회를 개최하며 세례식을 거행했다. 찬양하고 간증하기 위해 중령, 대령 부인들이 매일 밤 5~60명씩 들어왔다. 그 열기(熱氣)가 대단했었다. 그때 오신 강사들도 이성헌 목사, 장차남 목사, 김의환 총장, 전동식 군종감 등 부지기수(不知其數)였다. 그 행적들이 모두 해군 군종사(軍宗史)에 기록되었다고 한다.
    목포 3해역 사령부 군종실장으로 부임해서는 황무지 땅에 그 당시 공사비 현금만 1억원(땅값 제외) 해군교회(바닥만 152평)를 건축했다. 예배당은 없고 법당(法堂)이 부대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서 있어 그야말로 법사(法師)가 한 부대의 정신사를 이끌어가는 그야말로 복음의 황무지 같은 부대였다. 이런 곳에 예배당을 건축하는 일은 정말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2년여 동안 심혈을 기울이며 동분서주(東奔西走)했다.
    1983년 5월 12일(오전 11시) 역사적인 헌당식을 거행했다. 기쁨과 환희로 가득했던 그때를 지금도 많은 분들이 기억(記憶)하고 있다. 지금부터 40년 전, 그 당시 1억은 큰돈이었다. 지금의 10억보다 큰돈이었으리라...
    먼저는 집사람의 퇴직금(목포정명여중 교사)을 내놓고 조금 있었던 패물은 물론, 남양 어망 대표 홍순기 장로등 목포 시내 교회, 전국 교회, 특히 전국 여전도회 연합회(회장 김수계 권사)의 지원으로 그야말로 헌당식 날은 눈물과 기쁨으로 가득찬 대단한 축제(festival)였다. 사회자도 대표기도자도 설교자도 내빈들도 다 울었다…. 그리고 그해 7월 30일, 미련 없이 전역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꿈만 같았다. 지나고 보니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였노라!!!


   목포시온聖교회(40년 시무)

        필자는 1985년 5월 30일, 만 31세 젊은 나이에 부임하여 40년째 시무하고 있다. 보수색채가 짙은 지방교회에서는 파격이었고 목포노회에서도 1, 2위로 큰 교회였다. 솔직히 전혀 생각지 못했던 청빙이었다.
    필자는 목포에서 예배당 건축에 모든 힘을 다 소진했기에 다시는 이 땅을 밟지 않으리라는 마음으로 떠났는데 1년 6개월 만에 다시 내려와 목포에서 40년째 목회(牧會)하고 있으니, 이것을 어느 누가 사람의 계획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두말할 것 없이 하나님의 섭리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
    올해가 교회 설립 72주년이고 필자는 4대 목사요 40년의 사역을 마치려 한다. 전임 목사님(김원범)도 15년을 사역(44세부임, 59세 미국이민)하셨다. 당시 전라남도에서 총회 임원(3년)을 하신 유일한 분이시다. 그분이 갑자기 미국으로 떠나시면서 후임자로 해군 군목이었던 필자를 지목했다고 한다. 그리고 공동의회를 마친 직후 필자에게 전화를 주셨다. 이번 주 금요일에 즉시 이사 오라고...필자는 머뭇거림 없이 이사 왔고 그리하여 교회 강단을 한주도 비우지 않았다.
    우리 교회는 선교하는 교회이다. 필자의 일생 목회 철학은 “예배당은 작게” “생명 운동은 크게”였다. 40년 목회하는 동안 십일조와 감사헌금 외에 한 번도 특별헌금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선교헌금(매월 마지막 주일)은 어린이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 작정해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이 헌금은 황태연 선교사(1994년 3월 16일 파송)를 비롯해서 세계 20여 개국 선교사와 국내 30여 교회 목회자 그리고 총신대학교를 비롯한 70여 개 기관을 후원하고 있다.
    우리 당회는 당회장을 중심으로 일사불란(一絲不亂)하다. 장로 24명(시무장로 18명)은 오직 목회자 중심이다. 특히 선임장로(김민용)의 가슴에는 늘 한결같이 하나님, 교회, 목사가 자리매김하고 있다. 정말로 감사한 것은 40년 동안 후회 없이 소신껏 목회했다….
나는 목포를 사랑한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러하리라.
나는 다시 태어나도 목포에서 목양(牧羊)을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