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비번찾기

처음으로  |   교회소식   |   교회행사     

설교 sermon   |   칼럼 Colum

    60주년행사   |   자유게시판

 
   

교 회 소 개

   교회역사

    담임목사

   교회비젼

   섬기는사람

   예배안내

   차량안내

   연중계획

   오시는길

설  교   sermon
   (정용환목사)

칼   럼   colum
  (정용환목사)

  교 회 행 사 Event

찬       양

    찬 양 대

    엘로힘찬양단

    찬양_praise

    찬양게시판

주 일 학 교

    주일학교소개

    영유치부

    초 등 부

    중고등부

    청 대 부

나   눔   터

    자유게시판

    갤러리/ucc

    교우동정

    교회소식

 

전도/선교/복지

    전도기관

    새가족갤러리

    선교지역

    선교지소식

    지역아동센타

    특별활동

  교 인 사 업 장

  화  원  동  산

    (교회묘지)

 

 

포인트순 글등록순 새내기
관리자 0  
백곰이 0  
김길순 0  
홍주용 0  
5 오성일 0  
6 김나영 0  
7 안광수부목사 0  
8 사랑스런옥이~ 0  
9 김일봉 0  
10 나정순 0  
11 주바라기 0  
12 고재홍 0  
13 사랑으로 0  
14 주님사랑해요 0  
15 시온사랑 0  
cache update : 30 minute

전체방문 : 36,975
오늘방문 : 13
어제방문 : 9
전체글등록 : 4,158
오늘글등록 : 0
전체답변글 : 86
댓글및쪽글 : 75



 
정용환 목사 칼럼
작성일 2014-04-13 (일) 10:05
ㆍ추천: 1  ㆍ조회: 895      
IP: 121.xxx.85

부활의 적절성

 

기독교의 모든 주장 중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사망을 정복하셨다. 그분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라고 단언하셨다. ‘너희는 그를 죽였으나 하나님은 그를 살리셨고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라그는 가장 중요한 사실 즉 예수님의 죽으심과, 장사 지낸 바 되심과, 부활하심과 나타나심에 집중한다.

첫째로,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의미론적 질문) 둘째로, 그것은 정말 일어났는가?(역사성의 질문) 셋째로, 그것은 중요한가?(적절성의 질문) 우리가 믿지 않는 바를 분명하게 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첫째로, 부활하신 주님은 단지 살아남아 있는 영향력이 아니다. 한편으로 우리는 그 분에 대해 마치 유령과도 같이 그저 죽음을 면하고 살아남은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 분이 살아 계신다는 것이 아니라 구 분이 살아나셨다는 것이다.

둘째로, 부활하신 주님은 소생한 시체가 아니다. 부활(resurrection)과 소생(resuscitation)은 동의어가 아니다. 그 분은 야이로의 딸, 나인성 과부의 아들, 드리고 나사로를 죽음 가운데서 일으키셨다’(즉 이생의 삶으로 회복시키셨다). ‘되살리셨다가 다시 죽음의 절차를 다시 밟는 것은 다소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한 편으로 그 분은 졸도나 혼수상태에서 회복된 것이 아니었다. 그 분은 약 서른여섯 시간 동안 죽어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그 분은 살아났다가 그 이후에 다시 죽어야 할 필요가 없었다. 예수님은 새로운 실존의 상태로 부활하셨으며, 더 이상 죽지 않고 세세토록 살아계신다.

셋째로, 부활하신 주님은 그 분의 제자들의 체험 속에 되살아난 신앙이 아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명백히...과거 역사의 사건이 아니었다고 단언했다. ‘죽은 자 가운데서의 부활을 포함하는 역사적 사실이란 전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활하신 주님에 대한 믿음이 부활한 것과 다름없다. 다시 말해, 부활절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체험이다. 그의 제자들의 마음과 정신 속에서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믿음이 회복된 것이다.

넷째로, 부활하신 주님은 단순히 확대된 인격이 아니다.

다섯째로, 부활하신 주님은 단순히 성령에 대한 산 체험이 아니다.

여섯째로, 다섯 가지 제안과는 대조적으로 부활하신 주님은 변화되신 인물이시다. 예수님을 죽음의 영역에서 구해 내셨으며 그 분의 몸을 그 분이라는 인격을 담는 새로운 매체로 변화시키셨고 새로운 권세와 불멸성을 부여하셨다. ‘받은’(3) 원래의 복음. 보편적인 복음이라고 주장한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다시 살아 나사...보이셨다는 것이다.

 

첫째로 그것은 하나의 객관적이고 역사적인 시간이었다. 그것은 사흘 만에일어난 사건이다. 그것은 먼저 하나의 사건이었기 때문에 일련의 체험들이 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사흘 만에라는 말은 예수님의 역사성을 증거한다.

둘째로, 부활은 육체적인 것이었다. 네 동사가 모든 같은 주어, 즉 역사적이고 육체적인 그리스도를 주어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죽으신 것은 그 분의 몸이며, 그 분의 몸이 장사 지낸 바 되었다. 세 번째와 네 번째 즉 , 그 분이 다시 살아나셨고 보이셨다는 것이다. 그 분의 인격만이 다시 살아나시고 보이셨다고, 그리고 실상 그 분이 여전히 매장된 상태로 있으면서 다시 살아났다고 주장하려면 고도의 정신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그러지 않다

우리는 소생(이 경우는 육체적으로 다시 살아나긴 하지만 변화되지는 않는다)이나 잔존(이 경우는 유령으로 변화되기는 하지만 다시 육체적으로 살아나는 것이 전혀 아니다)이 아니라 부활(이 경우는 다시 살아나면서 동시에 변화된다)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부활은 정말로 일어났는가?

 

부활의 증거

첫째로, 시체의 사라짐이 있다. 모든 사람이 -심지어 복음서 기자들의 기사를 부인하는 사람들마저도- 요셉의 무덤이 비어 있었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단지 기절했을 뿐이며, 그 후 무덤에서 소생하여 스스로 그 무덤에서 나왔다는 주장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이유로, 먼저는 백부장이, 그리고 후에는 빌라도가 예수님이 죽었다고 확신했다.

당국(로마나 유대)에서 제자들이 그 분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소문을 퍼뜨리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시체를 치운 것이 아닌가? 실제로 그러했다면 사도들이 예수와 부활에 대해 전파하기 시작할 때 당국은 폭력에 의지하는 대신 시체를 제시함으로써 이 새로운 운동을 즉시 탄압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제자들이 속임수의 일환으로 시체를 훔쳐 간 것인가? 그들은 복음을 위해 고난받고 죽을 각오가 되어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들 자신이 퍼뜨린 거짓말을 위해 기꺼이 순교자가 되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둘째로, 주님의 다시 나타나심이 있다. 거의 6주 동안 계속해서 다시 나타나셨다.

셋째로, 교회의 출현이 있다. 무슨 일인가가 일어나 사도들을 변화시켜 그들이 세계를 향해 선교를 하러 가게 되었다.

하지만 2개월 이내에 그들은 기쁨과 확신과 용기에 가득 차서 나타났다. 극적인 변화, 그것은 오로지 부활과, 그 직후에 일어난 오순절 사건으로만 설명할 수 있다.

 

왜 부활이 중요한가?

 

첫째로,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확신시켜 준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에 여러 번에 걸쳐 죄 사함과 화평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만은 사람을 위해 흘리는 바...언약의 피라고 언급하셨다. 죄 사함을 그 분의 죽음과 연결 전체를 통해 죽음은 항상 죄에 대한 응분의 대가로서 죄와 결합되어 있으므로(‘죄의 삯은 사망이라’) 그 분의 이 말씀은 우리가 목숨을 구하고 죄 사함을 받도록 하기 위해, 우리가 받아 마땅한 죽음을 그 분이 우리 대신 감당하실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 분의 말씀이 옳다는 것, 말씀하신 것을 이루셨다는 것, 우리를 대신한 그 분의 죽음을 온 세상 사람의 죄를 위한 결함이 없고, 온전하며, 충분한 희생, 봉헌, 속죄로 받아들이셨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 대답은 이것이다. 만이 그 분이 계속 죽은 상태로 있었다면, 만일 그 분이 눈에 보이게 공개적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결코 그것을 알지 못했으리라는 것이다.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는 그 분의 죽음이 실패였다고 결론을 내려야만 했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는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 것이며’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부활이 없다면 사도들은 거짓 증인들이 되고, 신자들은 죄 사함을 받지 못하며, 죽은 그리스도인들은 멸망하는 가공할 만한 결과가 생긴다. 하지만 사실, 그리스도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 우리의 죄를 담당하신 그리스도의 죽음을 승인하신다는 것과, 그 분이 헛되이 죽지 않으셨다는 것과, 그 분을 믿는 자들은 충분하고 값없이 주시는 죄 사함을 받는 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셨다.

둘째로, 예수의 부활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확인시켜 준다. 그분은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실 수 있으며 우리를 그리스도를 닮은 자들로 변화시킬 수 있다.

우리는 그 주장들을 실증할 수 있을까? 오직 부활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분의 성령으로 내적 조명을 해주실 뿐만 아니라, 부활 안에서 그 능력을 외적이고 공개적이고 객관적으로 보여준다. 오늘날 누릴 수 있는 능력은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바로 그 능력이기 때문이다.

셋째로,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궁극적인 승리를 확신시켜 준다. ‘모든 동기, 모든 행동의 배후에 있는 근본적인 것은 소멸과 죽음에 대한 끊임없는 투쟁이다. 죽음이 주는 두려움은 절대적으로 사람의 감각을 마비시키며, 어떤 사람의 업적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든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제자들을 이러한 공포로부터 구해 주신다. 우리는 죽음을 면할 뿐 아니라 죽음으로부터 다시 살아날 것이다. 우리는 그 분의 부활체와 같은 몸을 갖게 될 것이며, 꿈에도 생각지 못하던 새로운 능력을 부여받을 것이다. 그분은 수확의 첫 열매이며, 또한 죽은 자들 가운데 먼저 나신 자가 되도록 부르심 받았기 때문이다. 그 분의 모든 백성은 그 뒤를 따라 부활할 것이다. 우리는 그 분과 같은 몸을 갖게 될 것이다. ‘우리가 흙에 산 자(아담)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그리스도)의 형상을 입으리라

그 분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을 뿐 아니라 우주를 새롭게 하실 것이다. 그 분은 만물을 새롭게 하실 것이다. 우리는 온 우주가 현재 처해 있는 썩어짐과 사망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되리라는 것과 자연의 신음이 새로운 세계의 탄생을 약속하는 해산의 고통이라는 것을 믿는다. 또한 우리는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이 있게 되리라는 것을 믿는다.

단지 살아남는 것이나 불멸하는 것뿐 아니라 부활한 변화된 몸이 되리라는 약속을 받는다. 그리고 우주의 운명은 천상에 있는 하늘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재창조된 우주가 되는 것이다.

예수의 부활이 이 두 가지 기대 모두에 대한 토대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죄 사함과 능력과 궁극적 승리를 확신시켜 준다. 우리의 과거에 직면할 수 있게 해주고 하나님의 능력의 충분하심을 확신함으로 우리의 현재에 직면하게 해주며 최종적 승리를 확신하심으로 우리의 미래에 직면하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