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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환 목사 칼럼
작성일 2011-07-22 (금) 14:17
ㆍ추천: 0  ㆍ조회: 810      
IP: 112.xxx.122
[논단] 맥도널드 언덕에서 얻은 교훈
정용환 목사(목포시온교회)
2011년 07월 18일 (월) 09:49:43 기독신문 ekd@kidok.com

   
  ▲ 정용환 목사  
두 달 전에 중앙아시아 끝자락 불의 나라 아제르바이잔을 다녀왔다. 사랑하는 청년들과 오랫동안 나를 도와 부교역자로 일했던 목사님들과 동행해 역사의 현장을 더듬었다. 필자의 교회에서 4번째로 파송한 A선교사를 위로하고 아름다운 꿈을 함께 공유하기 위함이었다. 수도는 바쿠이고 공식명칭은 아제르바이잔공화국이다. 1991년 8월 30일 소련으로부터 독립했다.

바쿠의 언덕에 올라서니 카스피해가 한눈에 들어오고 바람의 도시답게 세찬 회오리가 잔가지들을 뒤흔들었다.

아제르바이잔은 변화의 물결을 타고 있었다. 곳곳마다 건축열기를 볼 때 온통 세상이 바뀌고 있는 듯 보였다. 석유와 천연가스는 전 세계 20% 매장량을 자랑한다. 배화교(조로아스터교)의 온상지답게 거리마다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거친 광야에서 타오르는 불을 섬기던 순례자들이 쓰러져 잠들었을 밤. 나는 내가 어디에서 어느 시점에 살고 있는지를 생각하며 쉽사리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우리는 바쿠의 명동, 맥도널드에 앉았다. 시차도 시차려니와 더위에도 지쳤고, 러시아를 거쳐 이어지는 선교여정은 우리를 힘들게 했다. 우리 일행은 필자 교회가 파송하여 열대지방에서 사역하는 황선교사가 사주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바쁘게 움직이던 우리 몸을 잠시 쉬기로 했다. 땀이 식어지면 숙소로 돌아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그때, 내 친구 황선교사가 시계 그림이 실물크기로 인쇄되어 있는 책자 한권을 보여주었다. 오색영롱한 시계였다. 태엽이 훤히 드러나 보이고 시계 판도 참으로 정교하게 만들어져 시계라기보다는 아름다운 보석꾸러미라 할까. 이런 시계를 차면 사람들이 정말 보석처럼 행복할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리고 책장을 넘기는데 참으로 특이한 시계를 발견했다. 그 이름은 ‘토라’였다. ‘토라?’ 그건 모세오경을 말하잖아? 그러면 모세오경처럼 살라는 것인가? 의혹과 이해할 수 없는 의문의 표정으로 살펴보는데 그 옆에 그리스말로 ‘지금’이라는 말이 쓰여 있었다.

그렇다. 시제는 분명 ‘지금’인데 - 어거스틴의 시간관도 그렇고 - 왜 많은 사람들이 과거를 살지? 우리가 크레믈린 광장에서 본 러시아 정교회 사원의 시간은 분명 과거의 시간이었다. 이콘의 모습이 그러했고, 정교회 사제들의 옷차림이 그러했고, 그들의 의식이 그러했다.

순간 나는 손에서 녹아내리는 하얀 아이스크림을 보면서 ‘지금’이라는 시제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먹지 못하면 녹아서 없어지고 말 것이다. 그 맛의 느낌이야 금방 과거로 지나가고 말겠지만 그렇다고 먹고 느끼는 과거와 먹지 않고 흘려버리는 과거는 다른 것이다. 그래 지금 먹자. 감사하며 맛있게 먹자. 녹아가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무언가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어 성경을 펼쳤다. 시편 36편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있고, 주의 진실하심이 공중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사람들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하나이다… 주의 빛 가운데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그렇다. 시간은 주님이 주신 빛이다. 빛은 정지하지 않고 미래를 향해 달리며 현재와 과거를 만든다. 하나님이 피조물들에게 주신 가장 위대하고 귀중한 선물인 것이다. 그렇다면 누리고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갖고 주석을 보니 “주의 집에 있는 살진 것으로 풍족할 것이라. 주께서 주의 복락의 강물을 마시게 하시리이다”라는 해석이 달려있다. ‘것이다’, ‘하시리라’라는 말씀은 모두 ‘풍족하다’, ‘마신다’는 현재형으로 되어있었다. 그것은 오늘, 지금, 즉 현재라는 1시제에서 주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을 맛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빛을 보고 누려야 한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의 인생론을 보면 그에게는 늘 세 가지 의문이 있었다. 그것은 제일 중요한 시간은? 제일 중요한 사람은? 제일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였다. 그런데 어느 날 현인을 만나 답을 얻었다. 제일 중요한 시간은 ‘지금’, 제일 중요한 사람은 ‘지금 만나는 사람’, 제일 중요한 일은 ‘지금 만나는 사람과 선을 행하는 것.’

목회를 해오면서 얼마나 현실에 충실하고 미래지향적인 목회를 해왔는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때로는 전통과 관례라는 과거에 얽매여 진실은 보지도 못하고 앞가림만 하면서 살아온 것은 아닌지. 그 뿐 아니라 쏟아지는 영상물과 각종 정보지와 세미나 등에서 얻은 성장방법을 분별력 없이 베끼면서 맡겨진 양무리의 눈동자를 의식하지 못하고 막연히 무기력한 목회를 해 온 것은 아닌지 자책감이 몰려왔다.

예수님도 공생애를 마치면서 오늘, 지금을 강조하셨다. “말세가 홀연히 오리니” 이때 홀연히는 어느 미래의 시점이 아니라 현재의 시점이다. 현재의 시점에서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고, 나그네를 대접하고, 배고픈 이에게 먹을 것을 주는 그 사람이 홀연히 닥쳐 올 현재의 시간에 영광스런 주인공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 맥도널드 햄버거가 3단으로 된 것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바쿠의 명동 맥도날드 언덕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느낀 것은 바로 지금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주의 인자하심으로”, “주님의 진실하심으로”, “주의 의로우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