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비번찾기

처음으로  |   교회소식   |   교회행사     

설교 sermon   |   칼럼 Colum

    60주년행사   |   자유게시판

 
   

교 회 소 개

   교회역사

    담임목사

   교회비젼

   섬기는사람

   예배안내

   차량안내

   연중계획

   오시는길

설  교   sermon
   (정용환목사)

칼   럼   colum
  (정용환목사)

  교 회 행 사 Event

찬       양

    찬 양 대

    엘로힘찬양단

    찬양_praise

    찬양게시판

주 일 학 교

    주일학교소개

    영유치부

    초 등 부

    중고등부

    청 대 부

나   눔   터

    자유게시판

    갤러리/ucc

    교우동정

    교회소식

 

전도/선교/복지

    전도기관

    새가족갤러리

    선교지역

    선교지소식

    지역아동센타

    특별활동

  교 인 사 업 장

  화  원  동  산

    (교회묘지)

 

 

포인트순 글등록순 새내기
관리자 0  
백곰이 0  
김길순 0  
홍주용 0  
5 오성일 0  
6 김나영 0  
7 안광수부목사 0  
8 사랑스런옥이~ 0  
9 김일봉 0  
10 나정순 0  
11 주바라기 0  
12 고재홍 0  
13 사랑으로 0  
14 주님사랑해요 0  
15 시온사랑 0  
cache update : 30 minute

전체방문 : 36,972
오늘방문 : 10
어제방문 : 9
전체글등록 : 4,158
오늘글등록 : 0
전체답변글 : 86
댓글및쪽글 : 75



 
정용환 목사 칼럼
작성일 2013-09-22 (일) 13:23
ㆍ추천: 0  ㆍ조회: 901      
IP: 121.xxx.154

작은 예의 작은 배려

정용환목사(목포시온聖교회)

잘 차려입은 손님이 고급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메뉴판을 한참 보던 손님이 수프를 주문하자 웨이터가 수프 접시를 날라 왔다. “이건 너무 미지근한데, 좀 더 따끈한 건 없나?” 손님이 다른 걸로 요구하자 웨이터는 좀 더 뜨거운 수프로 바꿔 가져왔다. 그런데 손님은 또다시 퇴짜를 놓는 것이었다. “아냐, 아냐, 좀 더 따끈한 수프여야 해.” 세 번째 가져온 수프도 퇴짜를 맞자, 웨이터는 은근히 화가 치밀었다. “도대체 어느 정도 뜨거워야 손님 마음에 드시겠습니까?” 그러자 손님이 이렇게 대답했다. “가져올 때 자네 손가락이 수프 속에 들어가지 못할 정도라면 좋겠어.”

작은 예의 하나가 사람을 감동시킨다. 예의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부담감이나 금전적인 지출 없이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있다. 삶 속에서 많이 할수록 좋은 말이 있는데 이 말은 상대방을 높여주고 이해하고 용기를 주는데 큰 역할을 한다. ① 마음을 넓고 깊게 해주는 말이 있다. “미안해”이다. ② 겸손한 인격의 탑을 쌓는 말이 있다. “고마워”이다. ③ 날마다 새롭고 아름다운 말이 있다. “사랑해”이다. ④ 사람을 사람답게 자리 잡게 하는 말이 있다. “잘했어”이다. ⑤ 화해와 평화를 이루는 말이 있다. “내가 잘못했어”이다. ⑥ 모든 것을 덮어 하나 되게 하는 말이 있다. “우리는…”이다. ⑦ 봄비처럼 사람을 쑥쑥 키워주는 말이 있다. “네 생각은 어때?”이다.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문제들을 보라. “예의가 없어서 한마디 해주었어. 남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만 생각해서 싫은 소리했어.” 이와 같이 작은 것에서부터 문제는 시작된다. 조그마한 예의만 갖추면 귀한 사람으로 인정받는다. 사도바울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라.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것은 훈련된 인격과 고매한 성품에서 나오는 아름다움이며, 예의를 갖춘 배려에서 나오는 것이다. 옛말에 “말 한 마디가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했다. 채무자가 채권자를 말 한 마디로 감동시켰다는 뜻이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은 쟁반에 금 사과라고 했다.

남을 세워주는 일에 탁월한 은사를 가진 인물이 있다. 그는 바나바이다. 그가 가는 곳에는 변화가 일어났다. 낙심한 자가 일어나고, 희망을 상실한 사람이 희망을 갖고 새롭게 날개 짓 하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그의 은사가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것’이었다. 그는 가식으로 체면으로 자기를 포장하지 않았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가는 곳에는 상처가 꿰매지고, 치유와 회복이 있었다. 멀리서 바나바와 같은 사람이 찾아오기를 기대하지 말고, 내가 그런 사람이 되기를 힘써 보라. 작은 예의와 작은 배려를 가지고 자신을 훈련하고 만들어 가라. 그러면 변화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달리는 기차 안에서 졸거나 자는 사람이 많이 있다. 그것은 속도의 변화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속도의 변화가 없으면 안정적이지만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무료해지기 쉽다. 그러나 청룡열차를 타고 조는 사람은 없다. 그것은 순간순간의 변화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자기를 계발하고 훈련하기 위해서는 변화에 민감해야 한다. 작은 예의 작은 배려를 위해 나를 훈련한다면 보다 더 밝은 사회와 교회, 그리고 가정을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