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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환 목사 칼럼
작성일 2012-03-02 (금) 12:59
ㆍ추천: 12  ㆍ조회: 1069      
IP: 112.xxx.122
 
                       속도보다 방향이다
 
                                                         정용환 목사(목포시온聖교회)
 
                          
 
 
  ▲ 정용환 목사  
나폴레옹(Napoleon)이 전투를 앞두고 서산에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깊은 상념에 잠겼다. “내게 여호수아처럼 저 태양을 두 시간만 멈추게 할 힘이 있다면...” 드디어 다음날 전투가 시작됐다. 그런데 갑자기 천둥과 번개가 치고 소나기가 쏟아졌다. 길은 온통 수렁으로 변했고 나폴레옹이 자랑하던 막강한 대포들은 그야말로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이것이 바로 나폴레옹의 권세를 무너뜨린 워털루 전투다. 
 필자는 하나님의 은혜로 지구촌 90여개 국을 여행했다. 5대양 6대주를 대충은 둘러본 셈이리라. 지구촌 오지는 물론이요, 세계 3대 폭포로 불리는 브라질 이과수폭포, 미국의 나이아가라폭포, 아프리카의 빅토리아폭포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경이로움을 찬양했다. 이과수폭포(Iguassu falls)는 높이만도 82m이고 275개의 폭포들로 형성되어 있다. 낙수량은 초당 1만 2천톤, 그야말로 지축이 흔들리는 감동을 받았다. 필자는 여행을 통하여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인간의 연약함을 수없이 체험했다. 그러면서도 당당히 내 갈 길을 걷는 담대함도 배짱도 여행을 통해 배웠다. 재미있는 것은 세계 어느 곳에나 통하는 단어들이 있다. ‘할렐루야’ ‘빨리빨리’ 다. 물론 ‘빨리빨리 문화’가 성장과 발전을 가져왔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런 빨리빨리 문화로 말미암아 지금 우리민족은 죽음에 이르는 병을 앓고 있다. 우리시대는 성공이 최고의 가치가 되었고, 또 다른 종교가 되었다. 안타깝게도 이 빨리빨리 문화는 교회 안에도 존재한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성공하기 위해서이며 열심히 기도하는 것도 성공을 위해서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삶은 지위고하 소유여부가 아니라 하나님 말씀대로 사느냐에 달려있다.

  한국교회가 사는 길은 오직 하나님 중심의 신앙으로 돌아가야 한다. 사람이 사람다워지려면 그리스도의 영이 그 속에 충만해야 한다. 하나님은 오늘도 사람을 찾으신다. 종교로, 성직으로, 권력으로, 돈으로, 학력으로 자기 정체를 감추지 않고 두 개의 얼굴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다. 
 T.S 엘리오트(Elliott)는 현대人間을 가르켜 “속이 텅텅빈 인간” 이라고 혹평한다. 이 말은 인간의 허구성을 지적하는 말인데 썩어질 육체는 가지고 있으나 그 육체 속에 있어야 할 정의, 사랑, 양심은 없다는 얘기이다. 필자는 총회 재판국장을 역임 했다. 재판관은 하나님의 일을 대신한다는 자세로 하나님의 권위를 욕되게 말아야 한다. 재판관은 쌍방에 모두 공평해야 하고, 청탁과 뇌물에 흔들려서는 안된다. 물론 때로는 잘못된 일에 대한 구분은 있어도 함부로 남을 비판하고 정죄할 수는 없다. 모든 일의 최후 심판자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어느 공동체든지 입만 열면 ‘개혁, 개혁’을 부르짖는다. 과연 누구를 위하여 개혁하자는 말인가? 개혁의 방향은 당연 주님이어야 하고, 개혁의 주체는 ‘자기개혁, 자기성찰(自己省察)’ 이어야 한다. 필자는 드넓은 김제평야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들꽃이 무성한 뒷동산은 그야말로 필자의 운동장이었다. 그리 화려하지도 그리 풍성하지도 않지만 그 고고함과 청초함 때문에 더 사랑스럽다. 아무도 돌보는 이가 없어도 홀로 외롭게 자라면서도 모진 비바람을 다 이겨낸다. 저녁이 되면 어둠과 이슬 속에 묻힌다. 그러면서도 꽃들은 동편을 향한다.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을 기다리기 위해서다. 태양이 솟으면 잎새에 생기가 돋아나면서 움추렸던 꽃잎을 활짝 펴고 햇살을 받는다. 들꽃은 그렇게 태양을 기다리며 일생을 산다. 신앙인들은 들풀처럼 주님의 은혜를 기다리며 사모하는 주바라기 신앙을 가져야 한다. 
 미국의 작가 헤밍웨이(Hemingway)는 자신의 작품 속에 자신의 전쟁체험과 인생관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란 작품은 17세기 영국의 시인이자 신학자인 존 던(John Donn)의 ‘신앙록’ 제17절 ‘no man is island’에서 한 구절을 따온 것으로 시의 내용은 이렇다. “어느 누구도 저 혼자는 온전한 섬이 아니다.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 본토의 한 부분... 중략... 그러니 묻지 말라, 누구를 위하여 조종(弔鐘)은 울리느냐고, 종은 바로 그대를 위하여 울리는 것이므로...”
 자동차로 사막을 가로지르는 랠리(Rally)에는 항상 두 명이 한조를 이룬다. 대회기간 중 통과하는 국가는 프랑스, 벨기에, 독일, 폴란드를 거쳐 러시아, 카자흐스탄, 투르크만, 우즈베키스탄을 거쳐 중국 등의 국경을 넘는다. 카자흐, 타클라마칸, 고비 등 3개 사막과 고원을 헤치며 달리는 총 거리가 1만 6,000km에 달하고, 27일 동안의 대격전을 치른다. 그야말로 죽음과 모험의 대서사시로 불려진다. 한 사람은 운전대를 잡고, 또 한 사람은 페이스노트라고 불리는 방향키를 잡는 보조자인데 가야할 방향을 찾아내 운전자가 바른길로 가도록 유도한다. 속도가 생명이라고 여기는 랠리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방향인 것이다. 방향을 모르고 달려만 가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빨리 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바로 가는 것이 중요하다. 푯대는 오직 예수그리스도, 영혼의 구원이다. “내가하면 로맨스요, 남이하면 불륜”이라는 이중 잣대로는 결코 이 민족을 구원할 수 없다.
 치명적인 악성 빈혈을 앓고 있는 현대인의 정신으로는 사리판단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근본적인 해결의 길은 전 인류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이요, 참된 인간상의 회복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